[아시아타임즈=이하영 기자] “GPU(그래픽처리장치)에서 시작된 반도체 공급난이 메모리를 거쳐 레거시(성숙) 영역과 장비 시장까지 넘어왔습니다. 일부 신규 장비 납기가 2년 넘게 걸리다 보니, 중고 장비와 부품을 구하려는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고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의 말이다.

30년 가까이 실무와 교육 현장에서 반도체 업계를 선도해 온 김 대표는 지난 13일 <아시아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메이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들이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 20년 이상 된 노후 장비라도 국내외 서드파티 및 부품 수리 생태계가 잘 받쳐주면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며 “서플러스글로벌은 전 세계 5000여개 레거시 장비 관련 기업을 잇는 대장 역할을 하며 반도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과 빅테크 기업들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이 맞물린 결과다. 엔비디아의 첨단 GPU 확보 경쟁에서 촉발된 반도체 수급 불균형은 서버용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범용 메모리 공급 부족으로 번졌고, 이는 전방위적인 부품 쇼티지(공급 부족) 사태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국내 중고 반도체 장비 시장은 그동안 이 같은 AI 훈풍의 직접적인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단행된 설비 과잉 투자가 장기간 해소되지 않으면서 극심한 조정과 침체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전체 반도체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28나노 이상 레거시 공정에서 변화가 감지됐다. 데이터센터용 파워·아날로그 반도체 수요 급증에 힘입어 새로운 쇼티지 국면에 진입한 것이다. 신규 장비 납기가 2년 이상 지연되면서 중고 장비와 부품을 즉시 조달하려는 수요가 몰려 가격이 급등하자, 서플러스글로벌이 영위하는 레거시 유통 및 부품 시장의 반등 기대감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세미마켓(SemiMarket)’은 이러한 중장기 성장을 견인할 핵심 거점이다. 이달 준공한 세미마켓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소재 연면적 1만3000평 규모의 반도체 부품 플랫폼이다. 과거 글로벌 유수 기업들이 수차례 B2B(기업 간 거래) 마켓플레이스 구축에 도전했으나 방대한 데이터와 복잡한 프로세스의 한계로 좌절된 바 있다.
서플러스글로벌은 이번 세미마켓 오픈을 계기로 단순 중고 거래를 넘어서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장비 분해(하베스트), 카탈로그화, 수리, 품질 검증까지 일괄 제공하는 ‘AI SCM(공급망 관리) 플랫폼’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포부다. 이 플랫폼이 본궤도에 오르면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밸류체인을 견고히 다지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인 레거시 부품 거점이 될 전망이다.

사업 확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동력 중 하나는 자회사인 이큐글로벌(EQ Global)과의 유기적인 협업이다. 2017년 서플러스글로벌에 편입된 이큐글로벌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 시절부터 30년 넘게 축적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전공정의 핵심인 플라즈마 RF 부품 수리와 후공정 테스터 보드 수리에 독보적인 역량을 갖춰 현재도 전·후공정 장비 수리를 전문으로 담당하고 있다.
양사는 세미마켓에 반입된 중고 부품의 품질 검증과 수리를 선제적으로 진행한다. 이에 신품 수준으로 가치를 끌어올리는 밸류애드(Value-add) 전략을 실행 중이다. 이큐글로벌은 지난해 매출원가율을 67.0%에서 61.6%로 5.4%p 낮추며 원가 절감에 성공했다. 매출은 소폭 줄었으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90.5% 증가하는 등 수익성과 원가 관리 효율화를 달성하며 이익 체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 및 차세대 AI 서버 GPU 보드 수리(리페어) 신사업을 발판 삼아 이르면 2028년 기업공개(IPO)를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장비 라인업이 급증한 것도 서플러스글로벌에는 또 다른 사업 기회가 됐다. 반도체 칩 구조의 복잡화로 관련 장비가 늘어남에 따라 관리 또한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후 장비의 가동 효율을 극대화하고 사후 관리를 대행해 주는 매니지먼트 서비스 역시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회사는 글로벌 종합반도체 기업들의 장비 및 부품 관리 사업을 차근차근 확대 중이다.
김 대표는 “글로벌 종합반도체 기업들과 수년째 장비 효율화 및 부품 서포트 협력을 긴밀히 진행 중이며 시장 확대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TSMC, 인텔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월 500건 이상의 서비스 문의가 쏟아지고 있으나 현재 대응 가능한 물량은 50건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초과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속도를 내고 있는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굴기’에 대해서는 기술적 진입 장벽과 시간차를 들어 냉정하게 진단했다. 김 대표는 “중국 정부가 막대한 자금과 인재를 쏟아부으며 장비 국산화율을 30%대까지 끌어올렸지만, EUV(극자외선)나 DUV(심자외선) 등 초미세 노광장비 양산까지는 2035년에서 2040년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반도체 장비는 공정별 기술 격차가 큰 만큼 중국이 단기간에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자급자족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어 국내 장비 업계의 경쟁력과 관련해서는 “글로벌 5대 메이저 장비사와의 정면 승부가 어려운 만큼 차세대 공정과 틈새시장에서 얼마나 독창적인 기술 포지셔닝을 선점하느냐에 한국 소부장의 미래가 달렸다”고 짚었다.
한국 반도체 생태계가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지속 생존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는 ‘인재 육성’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김 대표는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경기 남부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리적 강점을 살리면서, 무엇보다 밤낮없이 헌신하는 우수한 엔지니어 인재 풀이 마르지 않도록 사회적·경제적 대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서플러스글로벌 역시 AI 기반의 독보적인 SCM(공급망 관리) 플랫폼을 완성해 현재 100억원 미만인 부품 매출을 2030년 1500억원까지 끌어올리고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인프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처 : 아시아타임즈 이하영 기자 (산업부)